문화 멍석 깔기
변보경 코엑스 대표이사 사장
`하던 짓도 멍석 깔면 안 한다` `앉을 자리를 보고 멍석 깔아라` 등 다양한 속담에서 보듯 멍석은 어떤 행위를 하기 위한 기본 도구입니다. 선조들은 놀이를 하기 위해 가장 먼저 멍석을 깔아 놓았습니다. 그래서 이런 속담이 나왔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즘 젊은이들에겐 생소하겠지만 멍석이란 짚으로 만든 큰 깔개를 말합니다. 어릴 적에 곡식을 널어 말리거나 동네잔치가 있을 때 손님을 맞이하기 위해 마당에 멍석을 깔았던 기억이 납니다. 어머니가 멍석을 깔면 동네 이웃들이 하나둘 모여들어 대화를 나누고 식사도 하곤 했습니다. 집집마다 하나쯤은 꼭 있을 만큼, 멍석은 이웃 간 소통을 위한 도구였습니다.
몇 년 전 홍콩 출장에서 색다른 의미의 멍석을 경험했습니다. `K11`이라 불리는 쇼핑몰은 단순한 쇼핑몰이 아닌 예술 중심의 복합 문화 공간이었습니다. 쇼핑몰 곳곳에 창의적이고 독특한 예술 작품이 설치돼 쇼핑과 함께 예술 감상까지 겸할 수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함께 간 사람과 작품이나 아티스트에 대해 끊임없이 대화할 수 있었습니다. 필자 또래의 중년 남성들에겐 익숙하지 않은 쇼핑몰 공간이 색다르게 다가왔던 것입니다.
`K11`을 만든 사람은 에이드리언 쳉 회장입니다. 쳉은 소비 공간이 아닌 사람들 사이에 이야기가 흐르는 새로운 플랫폼을 원했고 결과는 성공적이었습니다. 홍콩 시민들은 `K11`을 쇼핑몰 이상의 새로운 문화 공간으로 인식하기 시작했고, 아시아권 유수의 아티스트들도 작품 전시를 희망하며 새로운 커뮤니티로 자리매김하게 됐습니다. 쳉은 판매자와 구매자만 모이던 `마켓`에 예술가들이 함께 모일 수 있는 멍석을 깔아준 셈입니다.
귀국 후에도 한동안 `K11`에서 느낀 멍석의 개념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습니다. 한국에도 쇼핑과 함께 문화생활을 즐길 수 있는 멍석을 깔아주고 싶었습니다. 이런 공간이 자리를 잡게 되면 이후에는 그 공간을 찾아오던 사람들이 마치 홍대 앞 아티스트나 버스킹 밴드들처럼 스스로 문화 제공자가 될 수도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바쁜 일상과 개인주의로 상징되는 요즘은 한곳에 있어도 서로 공간을 공유한다는 느낌을 받기 힘듭니다. 소통을 위한 도심 속 문화 멍석이 더욱 아쉬운 요즘입니다. 그 옛날 마당 위 멍석에 삼삼오오 모여들었던 것처럼 무역센터에 지구촌이 소통하고 함께 문화를 즐길 수 있는 명품 멍석을 깔아 각국에서 벤치마킹하는 날을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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